요약
피고인은 법인 두 곳을 세워 법인 명의 계좌를 연 뒤, 매달 대가를 받기로 하고 그 계좌의 현금카드와 OTP 기기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습니다. 원심은 이용될 범죄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고 일부 카드는 경찰 수사 협조자가 준비한 것이라는 이유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부분을 무죄로 보았지만, 대법원은 이 부분을 파기했습니다. 대법원은 접근매체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어떤 행위에 쓰일 것이라는 미필적 인식만 있으면 되고, 구체적인 범죄 내용이나 죄명까지 알 필요는 없으며, 실제로 범죄에 쓰였는지도 따질 필요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같은 사건에서 법인 계좌 개설이 은행 업무를 방해했다는 업무방해 혐의는 은행의 심사가 불충분했다는 이유로 무죄가 유지되었습니다.
무엇이 문제 되었는가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3호는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또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다른 사람 명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에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 2015년에 새로 생긴 조항입니다.
이 사건 피고인은 두 가지 행위로 기소되었습니다.
- 법인 명의 계좌에 연결된 현금카드와 OTP 기기를 각각 월 300만 원, 월 80만 원을 받기로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준 행위
- ‘자금세탁 심부름’이라는 인터넷 게시글을 보고 연락한 사람의 지시에 따라, 기차역 물품보관함에 든 다른 사람 명의 체크카드를 꺼내 보관한 행위
두 번째 체크카드는 경찰 수사 협조자가 카드 수거 조직을 잡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것이었습니다.
원심과 대법원은 어떻게 달랐는가
| 쟁점 | 원심 (인천지방법원 2021노2136) |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1도17151 |
|---|---|---|
| ‘범죄’의 실체가 있어야 하는가 | 실행되었거나 실행이 예상되는 범죄의 실체가 있어야 함. 수사 협조자가 준비한 카드는 범죄에 쓰일 수 없으므로 범죄가 되지 않음 | 피고인의 주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함. 상대방이 실제로 범죄에 쓸 생각이었는지, 그런 범죄가 실제로 일어났는지는 고려할 필요가 없음 |
|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 판단하지 않음 |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에 쓰일 것이라는 인식이면 충분함. 범죄 내용, 죄명, 적용 법조를 구체적으로 알 필요는 없고 미필적 인식으로 충분함 |
| 공소사실에 범죄를 얼마나 특정해야 하는가 | 다른 범죄와 구별될 정도로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함 | 범죄의 유형이나 종류가 개괄적으로라도 특정되면 충분함 |
| 결론 | 이 부분 무죄 | 원심 파기, 인천지방법원으로 환송 |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인식이 있었다고 볼 근거로 몇 가지 사정을 들었습니다. 상대방이 인터넷에 대포통장 판매를 뜻하는 광고를 올려 두었고 피고인도 그 광고를 보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점, 자금세탁 심부름 게시글에 불법도박 사이트 관련 내용이 있었던 점, 피고인이 예전에도 대가를 받고 체크카드를 빌려주어 처벌받은 적이 있는 점입니다.
공소장에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라고만 적혀 있었지만, 검사가 원심 재판장의 요구에 따라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 등’이라고 범죄 유형을 밝혔고 피고인도 이를 다투지 않았으므로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었다고 보았습니다.
법인 계좌를 만든 것은 업무방해인가
이 사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이 접근매체를 넘길 생각으로 법인을 세우고, 정상 운영되는 회사처럼 꾸며 계좌를 개설해 은행의 계좌 개설 업무를 방해했다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도 기소했습니다.
대법원은 신청을 받아 자격요건을 심사하는 업무는 신청서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전제로 하므로, 담당자가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허위 신청서를 그대로 믿었다면 이는 불충분한 심사 탓이라고 보았습니다. 피고인은 예금거래신청서에 거래 목적을 ‘사업거래중’ 등으로 적고 양도 의사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을 뿐이고, 사업자등록증, 법인등기사항증명서, 법인인감증명서, 정관처럼 기본 서류만 냈으며, 은행이 추가 자료를 요구한 정황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업무방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결론을 유지했습니다.
코멘트: 실무에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 수사를 받는 경우: “어떤 범죄에 쓰일지는 몰랐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상대방의 광고 문구, 받기로 한 대가, 본인의 진술, 같은 전력 같은 정황으로 인식을 인정했습니다. 수사 초기 진술이 그대로 인식의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조사 전에 사실관계를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 함정수사로 넘겨받은 카드인 경우: 카드가 수사 협조자가 준비한 것이어서 실제 범죄에 쓰일 수 없었다는 사정은, 대법원 판단에 따르면 범죄 성립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 계좌 개설 과정에 대해서도 기소된 경우: 허위 신청서를 냈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업무방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은행이 어떤 서류를 요구하고 어떻게 심사했는지가 결론을 가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공개된 판결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별 사안의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빌려준 통장이 실제로 범죄에 쓰이지 않았는데도 처벌되나요?
처벌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는지는 피고인이 넘길 당시의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상대방이 실제로 범죄에 썼는지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1도17151 판결).
Q. 보이스피싱에 쓰일 줄은 몰랐고 그냥 돈을 준다고 해서 빌려주었다면요?
구체적인 범죄 내용을 몰랐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어떤 행위에 쓰일 것이라는 미필적 인식이면 충분하고, 죄명이나 범죄 내용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Q. 검사가 어떤 범죄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면 무죄 아닌가요?
범죄의 유형이나 종류가 개괄적으로라도 특정되면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검사가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 등’이라고 밝힌 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Q. 대포통장을 만들려고 법인 계좌를 연 것은 업무방해죄가 되나요?
이 사건에서는 업무방해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은행 담당자가 추가 확인 없이 신청서와 기본 서류만 보고 계좌를 열어 주었다면, 그 결과는 은행의 불충분한 심사 탓이므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위조 서류를 내는 등 사정이 다르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